• 최종편집 2021-09-09(목)

旭日旗、何が問題なの?ー「鬼滅の刃」から

욱일기 무엇이 문제일까요? 「귀멸의 칼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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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07.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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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우치 아키오.JPG

  <사진 아키오 객원기자>

 

漫画が原作のアニメーション「鬼滅の刃(きめつのやいば)」に、どっぷりはまりました。大正時代を背景に、人を喰う鬼を追う鬼殺隊の活躍を扱ったSF活劇です。

 

主人公の竈門炭次郎(かまどたんじろう)は家族を鬼に殺され、鬼にされた妹を人間に戻すために鬼殺隊に入隊、次々にせまりくる鬼との闘いに挑みます。

 

主人公一行、また柱と呼ばれるスーパー鬼殺隊員の活躍だけではなく、敵である鬼の抱える様々な事情にまで思いを馳せる描写がとても魅力的です。

 

世界各国、特に韓国でもたいへんな人気を呼び、年明けに公開された劇場版は観客数200万を超え、日本アニメーションの韓国上映観客数ではコロナ禍にも関わらず、「君の名は」や「千と千尋の神隠し」などに並ぶ記録を打ち立てました。

 

現在ネットフリックスでも好評放映中です。

 

 しかし、それでめでたし、めでたしとならないのが日韓関係の辛いところです。韓国で主人公の炭次郎の耳飾りが問題として大きく取り上げられました。

 

耳飾りは朝日をモチーフにしたような赤白のデザインで、漫画の中では「花札のような」と表現されています。それの何が問題なのかと日本人の多くはいぶかることでしょう。

 

ところが韓国では、それが旭日旗を連想させ、「日本帝国主義の象徴だ」と批判され、ついにはネットフリックス、映画からは耳飾りの赤白マークは消されてしまいました。

 

日本では「韓国はなんでもなんでもかんでもイチャンモンをつける」と、苛つく報道が多く、嫌韓感情を新たにする人もいるかもしれません。

 

 一つのデザインに対する両国の受け止め方の違いはどこから来るのでしょうか?元々朝日をモチーフにし、紅白のハレの印として様々な行事や商標、漁船の旗などに使われている旭日模様ですが、この模様をデザインした旗(旭日旗)は1970年に大日本帝国陸軍の軍旗、1889年には同海軍の軍艦旗として採用されました。

 

日の丸と並んで大日本帝国の軍隊進軍の先頭にはためき、侵略の歴史の記憶と切り離せないこの旗は、一昔前まではアジア諸国ではたいへん拒否感をもたれていました。

 

戦後も自衛隊の発足に伴い陸上自衛隊の「自衛隊旗」、海上自衛隊の「自衛艦旗」として採用されています。旭日旗を掲げる海上自衛隊の寄港を韓国側が拒否したこともあります。


 日本は植民地支配に対し、今もなお「日本軍"慰安婦"問題」「徴用工問題」などを初めとする戦後責任を果たしたとは言えません。その状況の中で韓国が、旭日模様=旭日旗=日本軍国主義の象徴ととらえ、それを連想させるアニメの主人公の耳飾りに敏感になるのは無理もないと言えます。

 

 もう一つ、「鬼滅の刃」の舞台である大正時代(1912年~1926年)は、韓国では植民地初期にあたります。この時代に対する韓国人の受け止め方にも配慮が必要です。

 

大正時代はあしかけ15年という短い期間ですが、大正デモクラシー政治的民主化が進み、女学生の袴姿やモボ・モガ(モダンボーイ、モダンガール)などの近代的で華やかなイメージが日本では定着しているようです。しかしこの大正の世は、お隣の朝鮮半島にとっては日本の植民地支配が始まった時期にあたります。

 

 日本は明治から大正への代替わり直前、1910年に大韓帝国を「併合」し、天皇直属の軍人が総督府のトップに立つ武断統治を始めました。「併合」前後からの抵抗運動を武力で押さえ、広範な人々が朝鮮独立を訴えた1919年(大正8年)の3.1独立運動も激しく弾圧しました。

 

その4年後、1923年(大正12年)の関東大震災時にも朝鮮人虐殺事件を起こしています。植民地から収奪した米、労働力は日本の近代化を下支えしました。

 

 「鬼滅の刃」の作者がどんな意図をもって大正時代を背景とし、炭次郎の耳飾りをデザインしたかはわかりません。ただ、日本のアニメや漫画は今や世界各国の読者に読まれ、日本への親しみを高める優れたツールとなっています。

 

それを送り出す側としては、国外の読み手への配慮をするのは当然のことではないでしょうか。そのためにはなによりも日本と相手国との歴史を知ることは欠かせません。

 

これは送り手だけの問題ではなく、日頃私たちがどれほど歴史を意識し、伝えようとしているかに関わっています。

 

私たちが苛烈を極めた植民地支配の歴史にきちんと向き合うこと、何をしたのか、これから何をしなければならないかを考え実践する必要を、「鬼滅の刃」にはまったこの機会にまた感じさせられました。

 


 

만화가 원작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푹 빠졌습니다.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사람을 먹는 혈귀를 쫓는 귀살대의 활약을 그린 SF 활극입니다. 

 

주인공인 카마도 탄지로는 가족이 혈귀로 인해 죽고 혈귀가 되어버린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귀살대에 입대, 잇따라 닥쳐오는 혈귀와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일행 또 주라 불리는 슈퍼 귀살대원의 활약뿐만 아니라 적인 혈귀가 안고 있는 여러 사정까지 생각하는 묘사가 매우 매력적입니다. 

 

세계 각국 특히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불러일으켜 올해 초에 개봉된 극장판은 관객수 200만을 넘어서 일본 애니메이션 한국 상영 관객수로는 코로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은」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 견줄 기록을 세웠습니다. 

 

현재 넷플릭스에서도 호평 방영 중입니다. 

 

그런데 이걸로 해피엔드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한일관계의 어려움입니다. 

 

한국에서 주인공 탄지로의 귀걸이가 큰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귀걸이는 아침 해를 모티프로 한 것 같은 홍백 디자인이고 만화 속에서는 「화투 같다」라고 표현됩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많은 일본인은 의아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욱일기를 연상케 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다」라며 비판받아 드디어 넷플릭스와 영화에서는 귀걸이의 홍백 마크가 지워졌습니다. 

 

일본에서는 「한국은 무엇이든지 트집 잡는다」라며 초조해하는 보도가 많았으며 혐한감정을 새로이 느낀 이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나의 디자인에 대한 양국의 반응의 차이는 어디서 왔을까요? 원래 아침 해를 모티브로 하는 홍백은 경사스러움의 뜻으로 여러 행사나 상표 어선 깃발 등에 사용되는 욱일 모양이지만, 이 문의를 디자인한 깃발(욱일기)은 1970년에 대일본제국육군 군기, 1889년에는 동 해군의 군함기로 채용되었습니다. 

 

히노마루(일장기)와 함께 대일본제국 군대 진군 선두에 펄럭이며 침략 역사의 기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깃발은 옛날에는 아시아 나라에서 사람들이 매우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전쟁 후에도 자위대 발족에 따라 육상자위대 「자위대기」, 해상자위대 「자위함기」로 채용되었습니다. 욱일기를 든 해상자위대의 기항을 한국이 거부한 적도 있습니다.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징용공 문제」 등을 비롯해 전후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사람이 ‘욱일 모양=욱일기=일본 군국주의 상징’으로 보고 이를 연상케 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귀걸이에 민감해져도 이해할만 합니다. 

 

또한 「귀멸의 칼날」 무대인 다이쇼 시대(1912년~1926년)는 한국에서는 식민지 초기에 해당됩니다. 이 시대에 한국 사람의 반응에도 배려가 필요합니다. 

 

다이쇼 시대는 햇수로 15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다이쇼 데모크라시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며 여학생들의 옷차림이나 모보 모가(모던 보이, 모던 걸) 등 근대적이며 화려한 이미지가 일본에서는 정착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이쇼의 시대는 이웃인 한반도에 있어서는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시작된 시기입니다. 

 

일본은 메이지부터 다이쇼 대가 바뀌기 직전 1910년에 대한제국을 「병합」하고 천황 직속 군인이 총독부 총독이 되는 무단통치를 시작했습니다.

 

 「병합」 전후로부터의 저항운동을 무력으로 누르며 광범위한 사람들이 조선 독립을 외친 1919년(다이쇼 8년) 3.1 독립운동도 격렬하게 탄압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후 1923년(다이쇼 12년) 관동대지진 당시에도 조선인학살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식민지에서 수탈한 쌀 노동력은 일본의 근대화를 받쳤습니다. 

 

「귀멸의 칼날」의 저자가 어떤 의도로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탄지로의 귀걸이를 디자인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는 이제 세계 각국에 많은 독자가 있고 일본에 대한 친근감을 높이는 훌륭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보내는 입장이면 외국 독자에 대한 배려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과 상대 나라와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이는 저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평상시에 우리가 얼마나 역사를 의식하고 전하려 노력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더할 수 없이 가열했던 식민지지배 역사와 마주 볼 것,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필요성을 「귀멸의 칼날」에 푹 빠진 이 기회에 다시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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趣味は歴史研究

はじめまして
プログを拝見しました。
貴女は、「鬼滅の刃」ほ一例に「外国読者への配慮をするのは当然だと思います。そのためには何よりも、日本と相手国との歴史を知っている。 これは、著者だけの問題ではなく、普段の私たちがどのような歴史を意識して伝えようと努力しているかどうかが重要です。」と述べられています。しかし一番の問題は、日本や欧米諸国で学ぶ朝鮮半島の歴史と、大韓民国や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で教育されている国の歴史は明らかに違っています。どちらが正しいとかはではなく、異なっているのです。加害者と被害者により、また国民の歴史認識により異なった見方というのではなく、事実が異なっているのです。植民地支配と日韓併合とかではなく、歴史のFACTが異なっています。ですから、作者としても、日本で学ぶ朝鮮半島の歴史と、大韓民国で学ぶ朝鮮半島の歴史と、で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で学ぶ朝鮮半島のけ歴史自体が異なっているのですから、作者は留学して、現地で歴史教育を受けない限り、貴女の要望は無理筋というものです。毀滅の刃の作者は今年で年齢32歳ですが、毀滅の刃の中のちょっとした描写は、日本人のほとんどは知らない歴史がさりげなく込められています。かなりの歴史通でしょう。ひとつだけ例を挙げておきます。『鬼滅の刃』12巻 第101話「内緒話」の中で、「宮さん宮さん(トンヤレ節)」を歌うコマがあります。この歌は、明治維新前の徳川幕府による長州征伐において、天才的でかつ先進的な軍略により徳川幕府軍を打ち破った大村益次郎が作った歌で、日本最初の軍歌ともいわれています。話が逸れまして、申し訳ありませんてぜした。私からひとつお教えします。日本は過去に二度と外国から襲われたことがあります2度目は第二次世界大戦時においてです。1回目は、日本でいう「元寇」です。中国大陸を支配したチナギス・ハーンが建国した『元」です。1274年に津島を襲い、守備していた武士と島民は殆ど殺されました。元軍は一部のモンゴル人指揮官と他は高麗軍(三翼軍)で、高麗軍のを指揮していたのは、都督使 金方慶、知兵馬事 朴之亮・金忻、副使 任愷達です。ご心配は不要です。そんな前の事恨んでいる日本人はいません。空襲や原爆で約30万人の書生と子供と老人たちが殺されても、アメリカを恨むより、国の立て直しと発展にエネルギーを向けたから、日本中が焼け野原にされてから19年後に、新幹線が開通し、東京オリンピックが開催できたのです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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