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 日本軍「慰安婦」メモリアル・デー
8.14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사진 오마이뉴스>
韓国に住んでいれば、8月15日が日本の植民支配から解放された光復節(日本では敗戦の日)だということはよくご存じだと思います。ではその前日の8月14日が何の日か、皆さんは知っていますか?
8月14日をネイバーで検索してみると、一番最初に「法的記念日、日本軍"慰安婦"被害者メモリアル・デー」とでてきます。この日は日本軍「慰安婦」問題を国内外に知らしめ、日本軍「慰安婦」被害者を称えるために制定された国家記念日です(ちなみに日本で調べてみると「専売特許の日」「裸足の記念日」としか出てきません)。
ではなぜ8月14日なのでしょうか?30年前、1991年のこの日、韓国人女性金学順さんが、韓国で、いえ世界で初めて公に、「自分が日本軍"慰安婦"被害者だった」と実名で公開証言をしました。市民団体がこの日をメモリアル・デーとして、毎年様々な行事、キャンペーンを行ってきましたが、2017年に韓国政府が、「日帝下、日本軍"慰安婦"被害者に対する保護、支援および記念事業などに関する法律」の一部改定を行い、正式に国家記念日としました。
1924年に中国東北部で生まれた金学順さんは、数えで17歳の時に北京で日本軍将校に連行され、「慰安婦」として中国各地を巡り働かされました。独立後の韓国に戻りましたが、その後もたいへん厳しい生活を送りました。1990年に日本政府が「慰安婦は民間業者が連れ歩いた」と日本軍の関与を否定したことを知り、金学順さんは怒りに打ち震え、「私がここにいる」と、ついに重い口を開いたのです。
この金学順さんの証言は、女性に貞操観念を強いる社会的風潮の中で自分達の被害を打ち明けることができず、心身の傷を抱え生きてきた女性たちに立ち上がる力を与え、韓国はもとより、アジア太平洋の国々、そしてオランダの女性たちが次々に自分も被害者だったと証言し始めました。
翌年、1992年の1月8日に日本の"公式謝罪"、"法的賠償"、"歴史教科書記録"などを求めて旧日本大使館前で開かれた水曜集会は、今年の7月14日に1500回目を迎えました。金学順さんはこの水曜集会だけでなく、様々な活動の先頭に立ち、運動を率いました。
被害者の立ち上がりを受け、日本政府は重い腰をあげ、日本軍「慰安婦」の調査に乗り出しました。歴史学者により日本軍の関与を裏付ける公文書が発見され、1993年に日本政府として責任を認めた「河野談話」が発表されました。「河野談話」は被害の内実に詳しく言及しておらず、不足の感は否めませんが、日本軍「慰安婦」問題に日本が国家として向き合うスタートラインとしては評価できます。
ところが90年代後半から侵略、植民地支配の過ちをなかったこと、正しいことだったとする歴史修正の動きが力を持つようになり、日本軍「慰安婦」被害者たちが日本で日本政府を相手に起こした裁判は次々と敗訴していきます。
日本の真の謝罪を受けられないまま、金学順さんは1997年の12月16日に亡くなりました。ともに立ち上がった被害者たちもまた一人また一人とこの世を去り、韓国政府が登録している被害者は14人です(2021年7月現在)。
そしてこの間、2015年12月28日の拙速な"合意"、2021年の1月8日の国際的な人権意識に照らし合わせた判決など、日本軍「慰安婦」問題は一進一退を繰り返していますが、被害者や支援者の粘り強い闘いは続いています。
☆金学順さんの証言から30年の今年の8.14に合わせて、京畿多文化ニュースの協賛でコラムの読者に素敵なプレゼントをお送りします。
コラムへの感想、ご希望、そして日韓歴史をめぐる思いなど、メッセージをお送り下さい。Stand for Human Rightsを掲げ、日本軍「慰安婦」被害者の運動を支援する社会的企業、マリモンド(Marimond)の商品を抽選で8人の方にお送りします。
メッセージの送り先:m_akio74@hotmail.com
締め切り:8月31日
住所、氏名、ご連絡先を必ずご記名下さい。(メッセージは韓国語、日本語のどちらでも構いません)
当選は発送をもって代えさせていただきます。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한국에 살고 있다면 8월 15일이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광복절(일본에서는 패전 날)임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날인 8월 14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십니까?
8월 14일을 네이버로 검색해보면 가장 먼저 「법적 기념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라고 나옵니다. 이날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국가기념일입니다.(참고로 일본어로 검색해보면 「전매특허 날」, 「맨발 기념일」만 나옵니다)
그러면 왜 8월 14일일까요? 30년 전 1991년의 이날에 한국인 여성 김학순 씨가 한국에서 아니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내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며 실명으로 공개증언을 하였습니다.
시민단체가 이날을 기림날로 매년 여러 행사, 캠페인을 진행해 왔다가 2017년에 한국정부가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을 해서 정식으로 국가기념일로 지정했습니다.
1924년에 중국 동북부에서 태어난 김학순 씨는 17세 나이에 북경에서 일본군 장교에게 연행을 당해 「위안부」로서 중국 각지를 끌려가며 일을 강요당하였습니다. 독립 후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 후로도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1990년에 일본 정부가 「위안부는 민간업자가 끌고 다녔다」라며 일본군의 관여를 부정한 것을 알게 되어, 김학순 씨는 분노에 떨며 「내가 여기에 있다」라고 드디어 무거운 입을 열었던 것입니다.
김학순 씨의 증언은 여성에 순결을 강요하는 사회적인 풍조 속에서 본인들의 피해를 털어놓지 못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온 여성들에게 일어서는 힘을 주며, 한국은 물론 아시아 태평양 나라들, 그리고 네덜란드 여성들이 잇따라 본인들도 피해자임을 증언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 1992년 1월 8일에 일본의 ‘공식 사과’, ‘법적 배상’, ‘역사 교과서 기록’ 등을 요구하며 구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는 올해 7월 14일에 1500번째를 맞이하였습니다. 김학순 씨는 이 수요집회뿐만 아니라 여러 활동의 선두에 서서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일어 섬을 보고 일본 정부도 마침내 일본군「위안부」조사에 미적미적 착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사학자가 일본군의 관여를 뒷받침하는 공문서를 발견, 1993년에 일본 정부로서 책임을 인정한 「코노담화」가 발표되었습니다.
「코노담화」는 피해 내실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으며 부족한 느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국가로서 마주 대하는 출발점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침략 식민지지배의 잘못을 없었던 것으로, 올바른 일이었던 것으로 만들고자 역사수정 움직임이 힘을 가지게 되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일으킨 재판은 잇따라 패소했습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한 채 김학순 씨는 1997년 12월 16일에 돌아가셨습니다. 함께 일어선 피해자들도 한 사람 또 한 사람 이 세상을 떠나시고 이제는 한국정부가 등록한 피해자는 14명입니다(2021년 7월 현재).
그간 2015년 12월 28일 치졸하기 짝이 없는 「합의」, 2021년 1월 8일 국제적인 인권의식의 발로라 해도 과언이 아닌 판결 등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진일퇴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피해자나 지원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학순 씨 증언으로부터 30년인 올해 8.14에 맞춰서 경기다문화뉴스 협찬으로 칼럼 독자들에게 예쁜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칼럼에 대해 느낌이나 생각, 희망 사항, 그리고 한일 역사에 관한 생각 등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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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날:8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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